[시문학 해설] 최남선│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Posted by TGT_Castiel
2015. 4. 6. 23:22 스터디 그룹/시문학 해설



[읽기 전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는《소년》창간호(1908.11)에 실린 국문학사상 최초의 신체시이다. 이 시는 웅대하고 넓은 기개를 지닌 바다도 꿈 많은 이 나라의 소년들만은 사랑하고 반기기 때문에 그 품에 뛰어들어 안기라는 내용의 시다. 형태적 구성과 주제의 표현, 그것의 시사적 위치에 주목하자.





1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2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3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4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5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6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맞춰 주마.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




[작품 해설]

   제목에서도 드러나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바다'가 '소년'에게 여러 가지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바다는 세속적 부귀영화나 지상적 권력을 아주 보잘것없는 것으로 부정하는 존재로 비유되고 있다. 이 때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콱'이라는 구절은 바다가 내포하고 있는 절대적 힘과 위력을 독자로 하여금 청각적으로 직접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바다도 '하늘'(5연)과 '소년'(6연)만은 부정하지 않는데, 그것은 하늘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이 일체 제거되어 있는 바다와 같이 '크고 길고 넓은' 공간이기 때문이며, 또한 소년은 '담 크고 순정한' 본질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육당의 바다는 무엇보다도 큰 것, 넓은 것, 기운찬 것의 대명사로 남성적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소년 또한 바다와 같은 힘과 생명력을 키워가며 신대한을 건설할 수 있는 자이다. 이와 같은 남성적 목소리와 강건성은 우리 시사에서 보기 드문 것이지만, 이 작품의 교훈시로서의 한계 때문에 빛이 바래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근대시가 '자아의식'을 중핵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념(바다)만이 일방적으로 자아(소년)에게 이야기하는 형식 속에서는 자아의 세계와의 갈등이나 고뇌, 투쟁 그리고 변증법적 발전과정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며 교훈적이고 관념적인 차원을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근대적 자아의식이나 미의식을 개척하지 못하고 '계몽주의'에 머물고 말았지만, 형태나 표현상에 있어서의 시도가 근대시로의 출발점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시사적 의의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