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 해설] 한용운│알 수 없어요.
[읽기 전에]
이 시는《님의 침묵》에 실려 있는 것으로, 신비로운 자연 현상을 통해 임의 신비와 임에 대한 그리움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비유적 대응 관계를 형성하는 시어가 어느 것인지 주의하면서 읽어보자.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작품 해설]
이 시는 의문형으로 끝나는 몇 개의 시행이 계속되다가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에 와서 일단 시상의 전환을 보여주나 다시 의문형으로 종결된다. 시상 전개로 보아 임을 느낄 수 있는 밝은 상황의 분위기를 가진 1행에서 5행까지와 임이 부재한 상황의 어두운 분위기가 '밤'으로 나타난 6행으로 나눌 수 있다.
1행에서 4행까지 '님'은 처음엔 '발자취' 소리만 내다가 먼 빛으로 '얼굴'을 보이고, 다음엔 '입김'을 느끼게 되고, 그리고 마침내 귓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5행에서는 임과의 이별의 순간이 온다. 그것은 저녁의 침침함 속에서 이루어지고, 나의 가슴은 약한 등불을 켜게 된다. 그 등불은 절대적인 임의 존재에 비해, 또 임과의 이별이라는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 약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 나의 가슴은 끊임없이 타올라 그 등불이 언젠가는 임의 존재를 확실하게 비추어줄 횃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임과의 이별이 보다 더 큰 만남을 위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불교적 변증법의 원리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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